처음 '본 투 비 블루(Born to Be Blue)'를 보았을 때, 나는 그다지 재즈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쳇 베이커라는 이름도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고, 그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이상하게 마음 한켠이 조용해졌다. 영화의 색감, 연기, 그리고 그 흐릿한 트럼펫 소리까지 모든 것이 마치 오래된 기억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화면을 따라 조용히 번져나갔다.
재즈, 그 느슨하고 불안정한 아름다움
재즈는 자유롭다고 한다. 정해진 답이 없고, 연주하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음악이 다르게 태어난다. 그런데 쳇 베이커의 음악은 조금 달랐다. 자유롭다기보다는 불안정했고, 가볍다기보다는 지독히 외로웠다. 영화 속 그의 연주는 마치 말을 아끼는 사람의 독백 같았다. 절제되어 있지만 진심이었고, 속을 다 꺼내놓지는 않지만 어딘가 슬펐다. 나는 그걸 듣는 내내,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들리는 것 같았다. 영화는 쳇이 화려했던 시절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미 무너진 이후의 이야기만을 따라간다. 그래서인지, 음악도 사람도 더욱 솔직하게 느껴졌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많은 걸 내려놓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는 다시 트럼펫을 입에 댈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없었지만, 음악을 놓을 수도 없었다. 그런 장면을 보고 있으니, 재즈라는 장르 자체가 쳇 베이커라는 사람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독은 도망일까, 버티기 위한 방법일까
영화 속 쳇은 여러 번 주저앉는다. 이빨이 부러져 연주를 못 하게 되고,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사랑하는 이에게조차 마음을 전하지 못한다. 그런 순간마다 그가 의지하는 건 마약이다. 나는 그 장면들을 보며 화가 나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묘한 기분도 들었다. 누구나 삶이 버거울 때 기대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 어떤 사람은 말, 어떤 사람은 음악, 어떤 사람은 사랑. 그리고 누군가는, 약물일 수도 있다. 그것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그냥 그렇게라도 살아보려는 몸부림 같았다. 쳇에게 있어서 중독은 단지 쾌락이 아니었다. 세상과 맞서기엔 너무 약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마지막 남은 방어막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는 그를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회복은 쉽지 않고, 사람들은 쉽게 떠난다. 그리고 결국, 자신을 다시 일으켜야 하는 건 본인뿐이다. 쳇은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의 모든 선택이 더 아프게 느껴졌다.
사랑, 그것조차 완전할 수 없다는 것
영화에서 제인은 특별한 존재다. 단순히 연인이라는 역할을 넘어서, 쳇에게 현실이자 이상이 되어버린 사람이다. 그녀는 그를 돌보고, 다치지 않도록 애쓴다. 하지만 그가 정말 원하는 건 그녀의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랑을 통해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증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게 사랑인지 의존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흐릿한 감정이 둘 사이를 지배한다. 나는 그들이 함께 있는 장면들을 보면서 계속 마음이 무거웠다. 분명 따뜻해 보여야 할 시간인데, 왜 이렇게 쓸쓸할까. 서로를 안고 있음에도 외로워 보이고, 같이 있어도 마음이 엇갈려 보였다. 그건 아마도 쳇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의 사랑을 받아도, 자신이 그럴 자격이 없다고 믿는 사람은 결국 외롭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 쳇은 무대에 선다. 트럼펫을 불고, 조명이 그를 비춘다.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얼굴엔 확신이 없다. 구원받았다는 표정도, 만족한 미소도 없다. 그저 ‘또 한 번 시작해보겠다’는 다짐이 있을 뿐이다. 나는 그 얼굴이 너무 현실적이라 오히려 위로가 됐다. 완전히 나아지지 않아도, 그렇게 하루를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게 진짜 회복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본 투 비 블루’는 음악영화지만, 동시에 사람의 이야기다. 흔들리고, 망가지고, 다시 연주를 시작하려는 한 사람의 아주 조용한 다짐. 그래서 이 영화는 소리보다 침묵이 더 인상 깊다. 대사보다 숨소리, 연주보다 쉼표. 쳇 베이커라는 이름보다, 그 사람의 흔들리는 마음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