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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2016),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이유

by cheda-cheeese 2025. 3. 16.

어릴 적 친구 관계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떠올려본 적 있는가? 친해지고 싶었던 친구가 어느 날 나를 멀리할 때의 서운함, 이유도 모른 채 소외당할 때의 외로움, 그리고 누군가를 밀어내야 했던 순간의 불편한 마음까지.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2016)은 이런 감정들을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게 포착해낸다.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사소해 보일 수도 있는 아이들의 감정이, 어린이들에게는 인생을 바꿀 만큼 크고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 우리들, 2016년 개봉작, 윤가은 감독

아이들의 세계, 그 안에 숨겨진 감정

영화의 주인공 선(최수인)은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친구를 소중히 여긴다. 방학 동안 우연히 만난 전학생 지아(설혜인)와 단짝이 되어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개학 후 지아는 반에서 인기가 많은 보라(이서연)와 어울리기 시작하고, 선은 점점 소외된다. 단순한 친구 관계의 변화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영화는 이 과정에서 어린이들이 경험하는 복잡한 감정을 하나하나 짚어낸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명확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라는 일부러 선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무리를 형성하며 서열을 만들어간다. 지아 역시 선을 일부러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선 역시 완벽한 피해자가 아니다. 그녀 또한 질투와 외로움을 감추지 못하고, 때때로 지아에게 감정적으로 행동한다.

우리는 자라면서 "어릴 적 친구 관계는 다 그렇지"라고 말하지만, 영화는 그 관계 속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깊은 감정을 경험하는지 보여준다. 단순한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가 한 아이의 자존감을 결정할 수도 있고, 평생 기억에 남을 수도 있다. <우리들>은 아이들의 감정을 가볍게 다루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이 겪는 감정이 어른들의 세계 못지않게 복잡하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강요하지 않는 감정, 섬세한 연출

윤가은 감독의 연출 방식은 감정을 억지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만든다. 감정이 최고조에 달할 때 극적인 음악이 흐르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토해내지도 않는다. 대신, 영화는 조용한 순간들을 포착하며 관객이 스스로 감정을 따라가도록 유도한다.

특히, 영화는 아이들의 시선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도록 구성되어 있다. 카메라는 항상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움직이며, 어른들은 배경처럼 존재한다. 이는 단순한 촬영 기법이 아니라, 감독이 설정한 중요한 연출적 요소다. 우리는 선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녀가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경험하게 된다.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선이 운동장에서 혼자 남겨져 있는 순간이다. 그녀는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볼 뿐, 그 안에 끼지 못한다. 그 장면에서 대사는 없다. 대신, 조용한 바람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배경을 채운다. 하지만 그 침묵이 너무나 크게 다가온다. 그 순간이 얼마나 외로운지, 그 공간에서 혼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를 관객은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들의 감정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아이들의 싸움은 금방 지나간다"라는 말이 얼마나 어른들의 시선에서 나온 것인지 깨닫게 된다. 어른들에게는 그저 흔한 친구 사이의 다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그 순간이 전부일 수도 있다. 영화는 이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아이들의 감정을 가볍게 여기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또한, 이 영화는 단순히 ‘왕따’ 문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결국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수많은 관계를 맺고, 또 멀어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어릴 적 친구 관계의 경험이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것처럼, 지금 우리의 인간관계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단순한 성장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어린 시절 우리가 겪었던 감정들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고, 지금 우리의 관계까지도 돌아보게 만든다. 윤가은 감독의 섬세한 연출,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그리고 강요하지 않는 감정선이 어우러져, 이 영화는 잔잔하지만 강렬한 울림을 준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크고 작은 관계의 변화를 겪는다. 어린 시절의 친구 관계나 지금의 인간관계나,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래서 <우리들>은 단순히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공감할 수 있는 영화, 그래서 2024년에도 다시 봐야 할 영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