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는 단순한 전기 영화나 전쟁 영화가 아니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 복합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반응했다. 수식이나 역사적 사건보다도, 한 사람의 고뇌와 불안, 양심의 흔들림이 훨씬 더 크게 다가왔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 영화 속에서 과학이 가진 양날의 검을 아주 날카로운 방식으로 꺼내 보인다.
과학은 그 자체로 무죄일까?
과학이 ‘선’인지 ‘악’인지는 늘 혼란스럽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지만, 동시에 전쟁 무기와 감시 기술도 같은 맥락에서 발전하고 있다. 오펜하이머도 처음부터 파괴를 원했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학문적인 호기심, 물리학의 가능성, 지식의 확장 같은 열정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결과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게 된다. 이 지점이 참 씁쓸하게 다가왔다. 한 사람의 천재성과 몰입이 인류사에 가장 파괴적인 순간으로 연결되었다는 사실. 문제는 과학 자체가 아니라, 과학이 사용되는 방향과 맥락이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 ‘할 수 있다’는 것과 ‘해야 한다’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고, 오펜하이머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죽음이 되었다”라는 고백의 무게
영화에서 가장 잊히지 않는 장면은, 실험이 성공하고 모두가 환호하는 가운데 오펜하이머 혼자 멍하니 서 있는 장면이다. 그 순간부터 그는 영웅이 아니라 죄책감을 안은 인간으로 변한다. 이 장면에서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우리도 종종 무언가를 이뤘을 때, 허무함을 느끼지 않는가. 원했던 걸 얻었지만, 그 끝이 진짜 행복은 아닌 듯한 감정. 오펜하이머는 그보다 훨씬 더 큰 무게를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죽음이 되었다.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는 그의 말은 단순한 수사나 과장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무거운 고백처럼 들렸다. 그 대사를 들으며 한동안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다. 과학적 성공이 인류의 재앙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너무 묵직하게 다가왔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나 전기로 보지 않는다.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다. 기술이 넘쳐나는 요즘, 오펜하이머의 고백은 우리 모두에게 “이건 정말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후회는 지워지지 않는 공식이다
영화가 끝나고도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다. 특히 오펜하이머가 마주한 ‘후회’라는 감정은 어떤 수식으로도 지울 수 없는 공식처럼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 무게를 평생 짊어지며 살았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흔히 천재를 완벽한 존재로만 보려 하지만, 그는 우리처럼 흔들리고, 무너지고, 후회도 하는 인간이었다. 놀란 감독은 그런 인간적인 면모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위인으로 묘사하는 대신, 한 사람의 내면을 꺼내 보여준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먹먹하게 다가온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단순히 ‘핵무기의 위험성’으로만 해석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무엇을 만들어내는 순간, 그 책임은 어디까지 따라오는가’라는 질문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과학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화려한 액션도, 큰 감정의 기복도 없지만, 보는 내내 긴장과 생각이 멈추지 않는 작품이다. 과학과 양심, 기술과 도덕, 성취와 후회 사이의 미묘한 균형. 그 위태로운 선을 걸어가는 한 인간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 각자의 삶에도 닿아 있다. 이 영화는 그런 복잡한 감정과 질문을 조용히, 그러나 묵직하게 던지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