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집>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단순한 가족영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어릴 적 감정들이 하나둘 떠오르면서, 이 작품이 단순한 어린이 영화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 <우리집>은 아이들의 시선에서 가족의 의미를 깊이 탐색하는 영화다. 현실적인 갈등을 다루면서도 과장되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준다.
어린 아이들의 세계, 그 속에 담긴 진심
영화는 초등학생 하나가 가족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어른들 입장에서는 사소한 다툼일 수도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가정이 흔들린다는 것이 얼마나 불안한 일인지 영화는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하나는 부모님의 불화를 겪으며 점점 불안해하고, 우연히 만나게 된 유미와 유진 자매는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각자의 상처를 가진 이 세 아이는 서로에게 기대며 어른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나름대로 풀어가려 한다.
이 과정이 특별한 것은, 영화가 아이들을 단순한 존재로 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름의 논리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때로는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예리하게 짚어내고, 때로는 답답할 정도로 순수한 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른들이라면 쉽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길 일도, 아이들에게는 세상을 뒤흔드는 커다란 사건일 수 있다는 점을 영화는 조용히 일깨워 준다.
어른들에게 던지는 질문 – 우리는 아이들의 감정을 얼마나 이해하는가?
어릴 적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막연한 불안감을 기억하는가? 그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방 안에 숨어 있었던 것 같다. 영화 <우리집>을 보며 나는 그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과연 아이들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을까?
영화 속 부모들은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다. 다만 그들은 어른의 시선으로만 문제를 바라본다. 하나의 부모는 자신의 불화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유미와 유진의 부모는 생계를 위해 바쁘게 일하느라 정작 아이들에게는 충분한 관심을 주지 못한다. 영화는 이를 통해 ‘어른들이 아이들의 감정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내가 인상 깊었던 장면은 아이들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떠나는 순간이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철없는 행동일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절박한 선택이었다. 이 장면에서 나는 문득 어릴 적 엄마에게 삐쳐서 집을 나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몇 시간 되지 않았던 그 짧은 가출이, 내겐 꽤나 거대한 모험처럼 느껴졌던 것이 생각났다. 영화는 바로 이런 아이들의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해 낸다.
윤가은 감독의 연출, 그래서 더 특별한 감동
윤가은 감독의 영화는 늘 아이들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하지만 그 방식이 독특하다. 대부분의 성장영화들이 갈등을 극적으로 그려내는 것과 달리, 그녀의 작품은 잔잔하면서도 강한 여운을 남긴다. <우리집>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는 특별한 사건 없이도 깊은 감정을 전달한다.
내가 가장 감탄했던 부분은 연출이었다. 이 영화에는 억지로 감동을 강요하는 장면이 없다. 조용한 카메라 움직임과 절제된 대사, 그리고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어우러지면서 진짜 아이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여운이 남았던 이유는, 이 영화가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배경음악도 적재적소에 사용된다. 과하지 않은 사운드트랙이 감정을 은근히 끌어올려 주면서도 영화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 작은 소리마저도 의미를 가지게 만드는 연출 방식이 참 인상적이었다.
<우리집>은 단순한 어린이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어린이들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할 기회를, 어른들에게는 아이들의 감정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 겪었던 감정들은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 다만 어른이 되면서 그 감정들을 쉽게 잊어버린 것뿐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아이들의 말에 조금 더 귀 기울이고 싶어진다. 어릴 적 내가 품었던 고민이 얼마나 컸는지, 그리고 지금의 아이들도 같은 감정을 겪고 있을 거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 가족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싶다면, <우리집>을 꼭 한 번 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