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테넷을 처음 봤을 땐 ‘이게 대체 뭐지?’ 싶었다. 물리학을 전공하면서 시간에 대한 개념은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방식은 그 모든 익숙함을 무너뜨리는 듯했다. ‘시간의 역행’이라는 개념은 그저 과학적 호기심이 아니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혼란스러움이 점점 매력으로 다가왔다. 전공자의 입장에서 이 영화는 단순히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감각하고 풀어가는 수수께끼’에 가까웠다.
이론보다, 감각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영화
보통 과학적 영화라고 하면, 이론적인 설명이나 공식이 전면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테넷은 반대다. 설명은 최소화하고, 그 자리에 체험을 배치한다. 탄환이 ‘들어가는’ 장면, 숨이 ‘역행하는’ 순간들, 그리고 회전문을 통과하면서 시간이 뒤집히는 느낌은 말로는 설명되지 않지만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그 점이 무척 흥미롭다. 과학은 언어와 수식으로 설명되지만, 이 영화는 오히려 과학을 감각적으로 전달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실제로 영화에서 언급되는 '엔트로피 역전'은 현실 물리학의 법칙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과학의 정확성을 보여주려 하기보다는, 과학적 ‘가능성’에 기반한 세계를 상상한 작품이라 느껴진다. 현실성과 상상력 사이, 그 미묘한 경계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영화. 그래서 더 설득력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을 다룬 놀란의 방식, 익숙하지만 낯설다
놀란의 영화에서 ‘시간’은 늘 중요한 테마였지만, 테넷은 그 중에서도 가장 과감한 시도를 보여준다. 인셉션이나 인터스텔라는 시간의 상대성을 다루었지만, 테넷은 아예 시간의 방향 자체를 거스른다. 전공자의 입장에서 ‘시간은 과연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자주 던져왔다. 테넷은 그 상상을 끝까지 밀어붙인 작품이다. 인과관계가 뒤섞이고, 원인보다 결과가 먼저 오는 장면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양자역학의 세계가 떠올랐다. 확률과 관측, 중첩과 비결정성 같은 개념들이 영화의 구조 속에 숨어 있는 느낌이었다. 물론 영화는 이런 개념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공자로서는 영화 속 장면 하나하나가 마치 과학 실험처럼 다가왔다. ‘만약 시간을 뒤집는 기술이 있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이 질문에 대한 감독의 상상이 정말 흥미롭다.
완벽하게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되는 영화
테넷을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 중 하나는 “이해하려 하지 마라, 느껴라”였다. 전공자 입장에서는 뭔가를 완벽하게 해석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지만, 이 영화는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엔 다소 답답한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관람을 하면서 점점 영화의 구조보다도 그 구조를 '보여주는 방식'에 집중하게 됐다. 물리학적인 정답보다, 그 정답을 찾아가는 사고의 흐름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좋았던 점은, 영화가 과학적인 상상을 다루면서도 인간적인 고민을 함께 끌고 간다는 점이었다. 시간의 역행이 가능해졌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과거를 바꾸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일까? 이런 질문들은 과학자의 영역을 넘어, 우리 삶과 맞닿아 있는 문제다. 그래서 테넷은 결국 과학 영화라기보단, 시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시각화한 작품처럼 느껴진다.
결국 테넷은 물리학 전공자라고 해서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오히려 개념의 깊이를 알기 때문에 더 많은 질문과 해석이 생겼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오래, 더 깊게 남는 작품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