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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2008) 세 감독의 시선으로 본 도시와 고립 (미셸 공드리, 봉준호, 레오 카락스)

by cheda-cheeese 2025. 4. 6.

도쿄!는 2008년 개봉한 옴니버스 영화로, 세 명의 감독이 각자의 시선으로 '도쿄'라는 도시를 해석한 작품이다. 프랑스의 미셸 공드리, 레오 카락스, 그리고 한국의 봉준호. 국적도, 스타일도 다른 세 사람이 같은 도시를 바라봤다는 점이 이 영화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통해 미셸 공드리를 좋아하게 된 이후 그의 작품을 찾다 이 영화를 알게 되었고, 봉준호 감독, 그리고 <소년, 소녀를 만나다>의 레오 카락스가 함께 했다는 사실에 더 큰 호기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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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ior Design – 쓸모없다고 느끼는 존재, 그러나 가장 책임 있는 사람

미셸 공드리의 단편 Interior Design은 도쿄로 상경한 커플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주인공 히로코는 꿈도 목표도 없이 애인을 따라 도쿄로 온 인물이다. 하지만 무관심한 애인과 친구 사이에서, 히로코는 점점 쓸모 없는 존재처럼 비쳐진다. 그들 중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했지만, 히로코는 ‘좁은 방을 차지하는 의자’처럼 여겨졌고, 결국 실제로 의자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선택받고, 비로소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 이 단편은 자신을 부정당한 개인이 어떻게 존재 가치를 다시 획득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Merde – 광인의 얼굴로 본 사회의 혐오와 편견

레오 카락스의 Merde는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프랑스어로 '똥'이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곧 작품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하수구에서 올라온 광인, 그는 도시를 혼란에 빠뜨리고, 사람들을 공격하며, 법정에 서게 된다. 사람들은 그가 말하는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그의 말을 해석할 수 있는 변호사가 등장하며, 광인의 이야기는 사회에 대한 혐오와 분노, 그리고 역설적인 자기 고백으로 전개된다. 이 작품은 단순히 기괴한 퍼포먼스를 넘어, 일본 사회 내 편견과 혐오, 타자화에 대한 날 선 시선을 담고 있다. 광인은 "신은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 틈에 나를 던져놨다"고 말한다. 이는 이방인, 혹은 '다른 존재'로 살아가는 개인의 외침처럼 들렸다. 한국을 혐오하는 일부의 시위, 반대로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인들, 양극단의 모습을 오버랩하게 되는 지점이기도 했다.

Shaking Tokyo – 고립된 자아가 세상과 마주하는 순간

봉준호 감독의 Shaking Tokyo는 가장 조용하고, 가장 깊은 울림을 준 작품이다. 히키코모리로 살아온 한 남자가 어느 날 피자 배달부와 마주치며 세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작은 접촉이 가져온 거대한 변화. 남자는 결국 집 밖으로 나가게 되고, 그가 마주한 도쿄는 더 이상 사람이 걷는 도시가 아니었다. 무성하게 자란 수풀, 말 걸 대상 하나 없는 거리, 로봇만이 길을 안내하는 풍경. 세상은 그를 기다리지 않았고, 그는 다시 처음처럼 길을 잃는다. 이 작품은 '고립'이라는 단어가 가진 두 얼굴을 보여준다. 스스로 고립되었던 자, 그리고 시스템에 의해 고립당한 자. 단 한 사람을 향한 감정이 세상을 흔들었고, 결국 자신을 흔들어 깨웠다는 점에서 강한 여운을 남긴다.

 

도쿄!는 도시 '도쿄'에 대한 작품이지만, 실은 도시가 만들어내는 ‘사람의 고립’과 ‘존재의 위태로움’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이 작품을 보며 느낀 건, 세 감독 모두 도쿄를 일본이라는 특정한 문화나 배경으로 바라보기보다는, 거대한 대도시가 가진 익명성과 고립감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관심 속에서 사라지는 사람들, 존재의 의미를 잃어가는 사람들, 그 안에서 자신을 정의하고자 발버둥치는 사람들. 각자의 방식으로 세 명의 감독은 도쿄라는 도시를 매개로, 보편적인 현대인의 외로움을 이야기한다. 마치 회색빛 콘크리트로 가득 찬 대도시 한가운데서, 누군가 나를 봐주기만을 바라는 듯한 시선으로. 나는 이 영화가 주는 고립감, 무력감, 그리고 소소한 희망의 조각들이 정말 오래 남았다. 단순히 “누가 연출을 잘했냐”보다 “누구의 이야기가 내 마음에 닿았느냐”를 되묻게 되는 영화. 도쿄!는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가슴속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