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 (Dunkirk, 2017)는 전쟁영화의 공식을 완전히 바꾼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을 그린 수많은 영화들이 인물 중심의 드라마에 집중했다면, 덩케르크는 전장의 공기, 시간의 압박, 그리고 말없이 흐르는 감정들로 승부한다. 이 영화를 처음 극장에서 봤을 때, 마치 직접 그 해변에 서 있는 듯한 긴장감을 느꼈다. 대사보다 사운드가, 이야기보다 구조가 더 크게 마음을 흔들었던 영화. 그래서 이 작품은 ‘몰입감 영화의 교과서’라 부르고 싶다.
세 가지 시점, 하나의 긴장감
덩케르크는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해변(1주), 바다(1일), 하늘(1시간). 이 서로 다른 시간축이 하나의 사건으로 수렴된다. 이 구조는 처음엔 다소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퍼즐처럼 맞아떨어지는 짜릿함을 준다. 이 ‘시간의 꼬임’이 관객을 계속 긴장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누가 주인공인지, 어떤 흐름으로 갈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놀란 감독은 이 세 개의 시간대를 교차 편집하면서도, 그 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말이 많지 않은 영화인데도,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특히 톰 하디가 연기한 조종사 캐릭터가 인상 깊었다. 헬멧에 가려진 얼굴, 거의 말 없는 상황에서도 묘하게 감정이 전달되더라. 이런 방식이야말로, 진짜 몰입의 기술이라고 느꼈다.
사운드와 리듬, 심장을 조여오는 연출
덩케르크를 보고 나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남는 건 대사도 아니고 장면도 아니고 ‘소리’다. 한스 짐머의 음악은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이야기의 일부처럼 작용한다. 시계소리, 엔진음, 총성과 폭발음이 리드미컬하게 배치되면서 관객의 심장을 조여온다. 그 긴박한 사운드 때문에 숨을 참는 순간이 많았다. 극장에서 숨죽이며 본다는 표현이 정말 이 영화에 딱 맞는 말이었다. 특히 인상적인 건, 음악이 멈추는 순간이다. 소리가 사라질 때 오히려 더 강한 감정이 몰려온다. 전쟁의 공포는 총알이 날아다닐 때보다, 그 다음의 정적에서 더 실감나게 느껴진다. 그 정적이 영화 속 인물들의 두려움을 더 깊이 공감하게 해준다고 느꼈다. 이런 연출은 정말 대단했다. 눈앞에서 어떤 설명 없이 벌어지는 일들인데도, 온몸으로 전해졌다.
말보다 감정, 극적 장치보다 현실
덩케르크는 사실 전쟁영화치고는 ‘영웅 서사’가 거의 없다. 대단한 전투 장면도 없고, 명확한 승리도 없다. 오히려 대부분의 인물들은 살기 위해 도망치고, 서로를 밀쳐내기도 한다. 그런데 그 점이 이 영화의 진짜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고 무력한 존재인지,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감정들이 오고 가는지를 정말 현실적으로 그렸다. 마지막에 병사들이 열차에 타고 조용히 고개를 숙인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영웅처럼 환호받는 게 아니라, 살아남았다는 것에 안도하면서도 어딘가 부끄러운 듯한 그 표정들. 이것이 진짜 전쟁의 얼굴이라고 느꼈다. 어떤 극적 장치 없이, 담담하게 그려지는 감정의 여운이 너무 깊어서, 영화가 끝나고도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덩케르크는 우리에게 스펙터클이나 눈물 대신, 체험을 안겨주는 영화다. 단순히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과 공간 안에 ‘함께 있는 것’ 같은 몰입감을 준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한 전쟁영화가 아닌, 체험형 예술영화라고 부르고 싶다. 몰입이라는 게 뭔지 알고 싶다면, 덩케르크는 최고의 교과서가 되어줄 것이다.